보로부드르(Borobudur)

Borobudur, Jawa Tengah, Indonesia

    ‘보로부두르(Borobudur)’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떨쳤던  사일렌드라 왕국 780-830년에 지은 불교사원이다. 완성 후에  사일렌드라 왕국이 붕괴되고 힌두교 왕국인  ‘산자야가 지배하면서 보로부두르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1006년 거대한 지진과 화산 폭발 등으로 오랜 세월 잿더미와 밀림으로 뒤덮여 있던 거대한 사원을 발굴하게 되는데 이때가  1814년이다.

 

    어제의 감동을 안고 서둘러  '보로부두르(Borobudur)'로 간다.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사람의 물결이 대단하다. 수학여행단 학생들,  단체 관광객들,  여행객들과 지역민 등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인종,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거대한 불교유적지 안으로 든다.  내 종교, 네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 경탄의 눈과 외경심을 담은 마음을 보내는 유적지다.

 

  문화유산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 무더기의 학생들도 눈에 띤다.  지진과 화산 폭발 등으로 무너지고 훼손된 세계적 유산을 유네스코가 나서 복원한 것이기에 더욱 귀하여 보존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복원 당시 산산조각이 났거나 사라져버린 조각들이 많아 작품이 제 짝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모양으로 짜맞추기한 불상이 많고,  벽면의 작품들 중에는 모조품으로 대신한 것도 있다. 그리고 짝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그림,  머리가 없거나 몸통이 온전치 못한 불상과 보살상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복원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어디냐. 전체를 보면 웅장하고 장엄하고 화려하고 불가사의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한 층 한 층 걸어 돌아 올라가면서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모습에 숙연함마저 든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은 부조로 된 벽화는 꼼꼼히 살피기가 어려울 정도다. 몇날 며칠을 두고 이 보조 벽화의 이야기를 알아가야 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고,  섬세하다.

 

  이렇게 발굴된 유적은 인도네시아의 지배권을 빼앗은 네덜란드에 의해  1907년부터  4년간에 걸쳐 복구공사가 행해지고 관리되어 오다가  1973년에 유네스코에서 대규모의 보수,  보존 작업을 일으켜 캄보디아의 앙코르왓보다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된다.  불교 유적으로는 아시아 최초라고 한다.

 

  먼 거리에서부터 그 장엄함이 느껴지는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높이  31.5m 높이에 밑단이 정사각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123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불교유적이다. 화산암  100만 개를 접착제 없이 쌓아올린 수많은 탑과 불상의 집합체로 내부는 빈틈없이 흙으로 채워져 있어, 하나의 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원은 크게 하층,  중층,  상층으로 구분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안정적인 구조이며, 하층에 해당하는 여섯 개의 층은 정방형으로 기단의 벽면에 정교하고 섬세하게 드러난 부조와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 부조에는 인간의 삶에서 오는 번뇌와 악업으로 인한 결과 등을 그림으로 새겨 표현했다.

  

  중층은 원형이며, 3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72개의 작은 불탑이 서 있으며,  상층에는 거대한 스투파(불탑)가 고고한 자태로 있다. 중상층은 석가의 생애와 깨달음의 과정을 부조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어 열심히 그림을 보면서 탑을 돌아올라 갔지만 그저 대단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어쩜 이렇게 돌에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나 하는 감상만 난무할 뿐이다.

 

  또 이 세 개의 층은 불교의 삼계를 뜻한다고도 한다.  즉, 번뇌에 휩싸인 욕망의 세계를 나타내는  욕계’,  깨달음을 추구하는  ‘색계’, 물질세계에서 해탈하는  ‘무색계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림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2500개 이상의 부조와  1만 명 이상의 인물이 새겨진 사원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그 우아한 작품성에 놀라고,  상층으로 올라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그 전망에 또 한 번 놀란다.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평원의 숲과 멀리 머라삐 화산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풍경도 이 사원을 돋보이게 하는 모습들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탑과 불상과 숱한 인간들이 새겨진 모습과 주변의 광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카메라에 담느라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하나라도 더 보고 새기기에 바쁘다

  볼거리가 무궁무진하여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지만 여행자는 구름에 달 가듯이 흘러가야 하는 존재기에 바라보고 또 뒤돌아보면서 다음 여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외국인 출입구

외국인 출입구는 자국인들과 달랐으며 가격도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보로부두르사원>은 세계 최대 불교건축물이다.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지인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일컫는다. 족자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2km 떨어져 있다.  <보로부두르>는 산크리트어로 *산 위의 절*이라는 뜻이다.

   토요일이라 아침부터 사람의 물결이 대단하다. 수학여행단 학생들,  단체 관광객들,  여행객들과 지역민 등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다양한 인종,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거대한 불교유적지 안으로 든다.

    먼 거리에서부터 그 장엄함이 느껴지는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높이  31.3m  높이에 밑단이 정사각형으로 한 변의 길이가  123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불교유적이다.  화산암  100만 개를 접착제 없이 쌓아올린 수많은 탑과 불상의 집합체로 내부는 빈틈없이 흙으로 채워져 있어, 하나의 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보로부두르사원>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념으로 만든 기념탑

 

  

 

  사원은 크게 하층,  중층,  상층으로 구분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안정적인 구조이며,  하층에 해당하는 여섯 개의 층은 정방형으로 기단의 벽면에 정교하고 섬세하게 드러난 부조와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다. 여기 부조에는 인간의 삶에서 오는 번뇌와 악업으로 인한 결과 등을 그림으로 새겨 표현했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복원 당시 산산조각이 났거나 사라져버린 조각들이 많아 작품이 제 짝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모양으로 짜맞추기한 불상이 많고, 벽면의 작품들 중에는 모조품으로 대신한 것도 있다.  그리고 짝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그림, 머리가 없거나 몸통이 온전치 못한 불상과 보살상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복원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보로부두루사원>의 높이는 약 31.5m, 기단 위의 정방향으로 3층, 원형으로 3층을 쌓고, 꼭대기에 커다란 종(鐘) 모양의 탑을 얹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814년 발굴된 유적은 인도네시아의 지배권을 빼앗은 네덜란드에 의해 1907년부터  4년간에 걸쳐 복구공사가 행해지고 관리되어 오다가  1973년에 유네스코에서 대규모의 보수,  보존 작업을 일으켜 캄보디아의 앙코르왓보다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된다. 불교 유적으로는 아시아 최초라고 한다.

  전체를 보면 웅장하고 장엄하고 화려하고 불가사의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다. 한 층 한 층 걸어 돌아 올라가면서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모습에 숙연함마저 든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은 부조로 된 벽화는 꼼꼼히 살피기가 어려울 정도다. 몇날 며칠을 두고 이 보조 벽화의 이야기를 알아가야 할 정도로 규모가 방대하고, 섬세하다.

 

 

 

    2500개 이상의 부조와  1만 명 이상의 인물이 새겨진 사원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그 우아한 작품성에 놀라고, 상층으로 올라서서 주변을 바라보면 그 전망에 또 한 번 놀란다.

 

 

   중층은 원형이며, 3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72개의 작은 불탑이 서 있으며, 상층에는 거대한 스투파(불탑)가 고고한 자태로 있다. 중상층은 석가의 생애와 깨달음의 과정을 부조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어 열심히 그림을 보면서 탑을 돌아올라 갔지만 그저 대단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어쩜 이렇게 돌에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나 하는 감상만 난무할 뿐이다.

 

 

   무슬림들도 종교는 다르지만 불교사원인 <보로부드르>를 찾았다. 내 종교, 네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 경탄의 눈과 외경심을 담은 마음을 보내는 유적지다.

 

원형 3층 위에는 구멍이 뚫린 스투파(탑) 72개가 있으며 탑속에는 정좌한 형태의 등신불상이 놓여 있다.

 

 

 

 

  <보로부두르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신전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 지어졌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이다. 회랑을 따라 사원에 오르는 행위가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진 찍는 자세가 진지하다

 

 

 

 

 

 

 

 

 

 

 

 

 

 

   사람들은 다양한 탑과 불상과 숱한 인간들이 새겨진 모습과 주변의 광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카메라에 담느라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하나라도 더 보고 새기기에 바쁘다

 

 처녀의 해맑은 웃음이 눈길을 끈다

 

 

 

 

발랄한 무슬림여성

 

회랑 벽면에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가르침이 부조로 형상화되어 있다.

 

부처의 생애를 담은 벽면부조

  사원을 둘러보면 두상이나 손이 잘려나간 채 훼손된 불상들이 적지 않다.  2005년 3월에는 밀반출된 보로부두르 사원의 돌부처가 뉴욕 경매시장에 나온 사실이 알려져, 인도네시아 정부가 경매중단과 반환을 요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준 요셉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부조를 보면서 6층까지 이르는 길이가 5km에 이르고, 쌓아올린 바위만해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만다라모양을 닮았다.

 

 

 

 

 

 

 

 

 

 

 

 

 

 

 

 

 

 

 

 

 

 

 

 

 

 

  세 개의 층은 불교의 삼계를 뜻한다고도 한다.  즉,  번뇌에 휩싸인 욕망의 세계를 나타내는  욕계’,  깨달음을 추구하는 색계’, 물질세계에서 해탈하는  무색계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림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문화유산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 무더기의 학생들도 눈에 띤다.  지진과 화산 폭발 등으로 무너지고 훼손된 세계적 유산을 유네스코가 나서 복원한 것이기에 더욱 귀하여 보존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보로부두르사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보다 3백년 앞서 건립됐다. 고고학자들은 보로부두르사원을 완성하는데 족히 50년은 걸렸을 거라고 말한다.

 

    ‘보로부두르(Borobudur)’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떨쳤던  사일렌드라 왕국이  780-830년에 지은 불교사원이다. 완성 후에  ‘사일렌드라 왕국이 붕괴되고 힌두교 왕국인  ‘산자야가 지배하면서 보로부두르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1006년 거대한 지진과 화산 폭발 등으로 오랜 세월 잿더미와 밀림으로 뒤덮여 있던 거대한 사원을 발굴하게 되는데 이때가  1814년이다.

 

세계문화유산인 <보로부두르사원>